복음 대학교의 역사와 발

복음대학교는 순수한 신앙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건강한 신학을 연구하는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습니다.

역사


복음대학교의 독특한 역사는 미주 고신 교단의 역사와 전통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미주 고신 교단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한국 기독교만의 독특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개혁주의 교단입니다. 특별히 미주 고신 교단은 일제 치하 순교와 핍박의 어둡고 무거웠던 시절에서 탄생한 교단입니다.

대한민국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강제로 식민지가 되었을 때, 일본인들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처형하고, 그들의 신인 황제에게 절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1938년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평양에서 열린 장로교 총연합회 27차 정기 총회에서 모든 참석자들은 만장일치로 신사참배가 우상 숭배가 아니라는 결의를 하게 됩니다. 당시 유일한 반대자는 브루스 헌트 목사님이었으나 회의를 감시하던 일본 경찰에 의해 쫓겨나게 됩니다. 브루스 목사님 이외에도 대하던 많은 목사님들이 있었으나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못하게 됩니다. 후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기독교인들은 투옥되거나 고문 끝에 순교하기에 이릅니다.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한 후, 끝까지 일제에 저항했던 의로운 신앙인들은 신사참배에 참여했던 모든 교회와 교인들에게 참회의 기간을 가질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아울러 고려신학교라는 이름의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게 됩니다. 1951년에 열린 제 36차 장로교 총회는 일제에 저항하고 변절한 신앙인들에게 참회를 요구한 신앙인들을 제명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제명된 목사들을 중심으로 고려 교단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려 교단의 창립자들은 일제의 우상 숭배에 굴하지 않았던 개혁 신앙에 헌신하기로 다짐합니다. 브루스 헌터 목사, 한상동 목사, 박윤선 목사와 같은 이들이 주축이 되어 교단과 신학교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복음대학교의 초대 총장이었던 이근삼 박사는 고려 신학교의 초기 교수의 일원으로 봉직하였습니다. 이후 고려 교단과 신학교는 그 이름을 고신으로 바꾸게 됩니다. 프랑스의 위그노나 영국의 청교도처럼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노력한 고신 교단은 한국 기독교 역사의 빛나는 거울처럼 자리잡게 됩니다. 고신 교단의 순교와 희생 정신은 지금도 복음대학교를 비추는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1995년 이근삼 박사는 고신대학원을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 설립합니다. 1998년에는 1992년에 설립된 퍼시픽 성결 대학과 합병하여 미국 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시안 아메리칸 교회들을 위한 이중 언어 목회자 양성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교육기관으로서 복음대학교는 그 독특한 비전을 동양과 서양, 그리고 학문과 선교 및 목회 현장에서의 가교 역할에 두었습니다. 그렇기에 학문과 삶의 현장 어느 한 곳에 치우지지 않은 균형잡힌 교육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언어적 측면에서도 한국어 뿐만 아니라 이중 언어로 선교와 목회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일꾼을 키워나가기 위해 한층 교육 역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1999년 복음대학교는 그 이름을 에반젤리아 대학으로 변경하였는데,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입니다. 이근삼 박사의 지도력과 고신 교단과의 굳건한 연계 속에서 복음대학교는 그 개혁 신앙의 정체성과 꿈을 계속 키워왔습니다. 이 빛나는 전통과 기초 위에서 복음 대학교는 건강하고 엄격한 신학적 훈련을 제공하는 교육 기관으로의 명성을 쌓아왔습니다. 아울러 학생들의 순전한 마음과 태도를 계발하는 중요한 역할도 담당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사회 각계 각층의 기부를 통해서 학부와 대학원 모두에서 우수한 기독교적 교육을 제공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복음대학교는 선교 교육의 중심지, 개혁 신학의 중심지로서 그 사명을 다하고자 합니다.